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이순희: 2025년을 맞기 전에 2024년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서 그간 있었던 일을 쭉 뒤돌아봤어요. 지난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계엄령이 내려지던 날이었어요. 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의 앞날이 걱정됐죠.
기자: 12월 3일 남한에 계엄령이 내려졌으니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요. 전 국민 모두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죠. 이순희 씨께서는 계엄령 선포 당시 기억나시나요?
이순희: 계엄령이 선포된 건 오후 10시 반쯤이었어요. 전 그날 밤 12시 22분에 알고 지내던 남한 친구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와서 (너무 늦은 시간이라) 깜짝 놀라 전화를 받으니, 친구가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단다"라고 소식을 전해줬어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정신도 못 차리고 얼떨떨하게 왜냐고 묻다가 전화가 뚝 끊겼어요. 그래서 '아차, 텔레비전을 보면 알겠구나' 싶어서 텔레비전을 켜보니 남한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들어가려고 담을 넘으면서 "군인들이 국회를 통제하고 있어 담을 넘어가고 있습니다"라며 중계하고, 경찰들은 국회 앞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통제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기자: 45년 만에 발생한 계엄령이라 생소한 분들도 많고, 다들 놀라셨을 텐데요. 이번 계엄령 사건이 있기 전에 계엄령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이순희: 저는 북한에 있을 때 계엄령에 대해 들어봤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남조선에서 군사 계엄령을 선포했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거든요. 그런데 최근까지 정확히 어떤 뜻인지 잘 몰랐죠.
기자: 아직 계엄령이 익숙하지 않을 북한 청취자분들을 위해 어떤 건지 간략히 설명해 주시죠.
이순희: (계엄령은) 국가비상사태 시 정부가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거나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발동하는 특별한 권력 행사라고 해요. 또 이번에 알게 된 건데, 군사적인 통제를 통해 통상적인 행정권과 사법권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해요. 이걸 듣고 개인적으로 계엄령을 내린다는 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고 느껴졌어요.
기자: 탈북민으로서 바라보는 계엄령 사태는 또 다를 것 같아요. 이번 계엄령 사태와 관련해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어떤 거였나요?
이순희: 이번 계엄령은 아주 짧게 끝났어요. 12월 3일 밤 10시 반에 선포됐는데, 4일 새벽 4시 반에 완전히 해제됐고 군인과 경찰들도 철수했어요. 총 6시간 만에 종료된 거예요. 저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계엄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투표를 통해 이를 저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놀라웠어요. 심지어 불과 2시간 반 만에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해 달라는 투표 결과가 나온 건 굉장히 신속하게 진행된 거예요. 그만큼 남한의 민주주의 체계가 잘 잡혀있고 정확히 집행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자: 계엄령 이후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이순희: 사실 너무 늦은 시간에 계엄령이 선포됐다가 사람들이 깨기 전에 해제가 됐기 때문에 남한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도 꽤 많았어요. 아침에 일어나서야 방송을 통해 소식을 들은 국민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정치 색깔을 떠나 계엄령 소식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어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계엄령이냐?"라는 말이 많았어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호되는데, 계엄령 때는 이 모든 게 통제되거든요. 탈북민 중에는 계엄령 소식에 북한 생각이 나서 오싹했다는 사람들도 있었죠. 말하자면 항상 북한은 남한의 계엄령 상태처럼 항상 통제 속에 살거든요. 북한의 생각이 나서 탈북민들은 좀 긴장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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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북한 생각이 나서 긴장되고 오싹했다는 말씀인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이순희: 북한에서는 3대 독재 체제가 이어지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 통치자인 김정은 총비서의 명령과 지시는 누구도 어길 수 없는 하늘의 명령과도 같아요. 그래서 그에 반하는 의견을 낸다는 건 상상도 못 하고, 조금이라도 불평이나 불만을 나타내면 보위부 정보원들의 감시망에 걸려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 총살당해요.
남한에도 계엄령이 내려지면 군인들이 주요 기관들을 장악하고 혹시라도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거든요. 남한 국민들이 모두 힘을 합쳐 지켜낸 자유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북한처럼 변한다면 그보다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요? 아무리 필요한 조치일지라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신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계엄령을 모의했던 사람들의 죄를 묻는 절차를 밟고 있어요.
기자: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시위까지 이어졌죠?
이순희: 맞아요. 그 부분도 굉장히 놀라웠어요. 지난 2016년에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긴 했었지만, 이번에도 이런 시위가 벌어질지 상상 못 했어요. 이번 시위 규모가 남한 역사상 두 번째로 크대요.
기자: 대략 몇 명이 이번 탄핵 집회에 참여한 거죠?
이순희: 정확히 추산하기 어렵지만, 12월 7일 탄핵 집회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던 오후 4시 기준으로 경찰 측은 20만 명 정도로 추산했고 주최 측은 100만 명으로 집계했어요. 어쨌든 둘 다 매우 많은 숫자라고 볼 수 있죠.
기자: 특히 이번 시위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참여하며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고 하는데요. 예전에는 화염병이나 촛불을 들고 시위에 나섰던 반면 이번에는 응원봉을 들고 거리에 나온 분들이 많았다던데 정말인가요?
이순희: 네, 맞아요. 이번에는 어린 학생들, 대학생들까지 참여했어요. 남한 곳곳에서 탄핵 집회가 열렸는데요. 제가 사는 대구에서도 중심거리인 동성로와 공원 일대에서 (집회가) 개최됐어요. 저는 시위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면서 본 적이 있는데요. 시위에 깃발과 촛불 등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젊은 사람 중에 응원봉을 들고 있는 사람이 꽤 있더라고요. 남한에는 아이돌 가수를 응원하는 그룹끼리 정해진 응원봉이 있는데, 시위에 밝게 빛나는 물건이 필요하니까 다들 이 응원봉을 집에서 들고나오는 거예요. 참 신기하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이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모습을 보니 감동적이기도 했어요.
기자: 2024년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남한 계엄령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한 달이 현시점에서 이순희 씨의 생각과 느낀 점도 들려주시죠.
이순희: 계엄령에 이어 탄핵까지 남한이 굉장히 혼란스러울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재는 굉장히 안정된 상황이고요. 지금은 계엄령이 법에 위반됐는지,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조치가 이뤄지고 있어요. 저는 이런 사건조차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한 명이나 한 기관의 독단적인 수단이 아니라 적법한 절차로, 정해진 체계에 의해 풀어나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기자: 네,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2024 남한 계엄령 사태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