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한인권법 20주년 기획]➄ 서로 돕고 이끄는 미국 서부 탈북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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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올해는 미국 북한인권법이 제정된지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먹을 것을 찾아 중국 국경을 넘어 방황하던 탈북민들은 자신들을 난민으로 받아주는 미국으로 구름처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낯선 땅에 뿌리 내리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미국 북한인권법 제정과 탈북민들의 정착이야기를 보내드립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서로 돕고 이끄는 미국 서부 탈북민들”편을 보내드립니다. 보도에 정영기잡니다.

[LA 시내에 위치한 납골당] 발자국 소리, 문소리

큰 도로변에 위치한 납골당은 원형으로 된 건물이었는데, 철제 바자를 두른 한쪽 면에는 대리석으로 장식된 어른 키보다 높은 유골을 보관하는 벽이 있습니다.

[철제 문 여는 소리]

[김영구 목사]주옥순!

지난 10여년간 탈북민들의 정착을 꾸준하게 도와준 로스엔젤레스 남가주 지역 엔키아선교회(NKIA) 대표인 김영구 목사가납골당에 안치된 탈북여성 주옥순 씨의 이름을 되뇌입니다.

[기자]몇 년도에 돌아가셨나요?

[김영구목사] 2020년이요. 암으로 투병하다가 돌아갔어요. 이분은 고향은 양강도 혜산이고요.

양강도 혜산시가 고향인 주옥순씨는 중국을 떠돌다 미국에 입국한 뒤, 2020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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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소재의 대한장례사 납골당에 안치된 주옥순 씨. / RFA PHOTO-정영

[기자] (고 주옥순 씨 유골보관함 가리키며)이거 문을 열수가 있나요?

[김영구 목사]요걸 뜯을 수 있지요. 이곳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어요. 이 안에 뼈가 들어있어요.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국에서 유명을 달리한 주옥순씨를 탈북민들이 모여 장례식을 치뤘고, 이곳 납골당에 안치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옥순씨가 생각날 때마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겁니다.

[통일교육위원 엘에이 협의회 오피스] 계단을 오르는 소리

통일교육위원 엘에이 협의회 이순희 회장과 김영구 목사, 샘현 미주북한인권통일연대 사무국장 등이 모여 7월 14일에 진행될 행사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샘현 사무국장] 우리 탈북민들 입장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날'은 광복절이 되는 거잖아요. 중국에서 강제북송만 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탈북민들이 들어올 수 있는데, 그런데 중국때문에

지금 탈북자수가 80%나 줄어들었는데, 그래서 먼저 온 탈북민들이 중국 영사관에서 시위 하는 게 너무 뜻깊고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7월 14일은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지정한 기념일입니다. 이날을 맞아 로스엔젤레스 지역 탈북민들의 단체인 ‘미주북한인권통일연대’와 통일교육위원 로스엔젤레스 협의회 위원 등으로 구성된 행사준비위원회가 머리를 맞대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미주북한인권통일연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샘현씨가 7월12일 엘에이 주재 중국 영사관에 가서 탈북민 강제북송 반대시위를 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행사 준비위원회는 한국총영사관과 긴밀한 협의하에 7월 12일부터 14일까지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탈북민들을 초청해 행사를 크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김영구 목사]주옥순 집사님이라고 아까 탈북민인데 암으로 돌아가셔서, 대한장례사에서 납골당을 사다가 모셔놨어요. 그런데 동부에서는 탈북하다 돌아가신 영령들에 대한 추모식도 한다고 하는데, 주옥순 집사님도 암으로 돌아가셨지만, 실상 탈북민 피해자이니까, 그 묘자리에 가서저희들이 탈북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추모하는 그런 행사도 지금 준비하고 있고요.

[기자] 여기 LA 지역에 통일교육위원이 모두 몇 명이나 되고 거기에 탈북민이 몇 명 소속돼 있습니까?

[이순희 통일교육원 엘에이 협회 회장]이번 24기에는 탈북민이 모두 4분이에요. 전체 통일교육위원 50명 중에 4명이 탈북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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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육원 로스앤젤레스 협의회 위원들이 7월 14일 ‘북한이탈주민의 날’ 행사 준비를 토론하고 있다. / RFA PHOTO-정영

[기자]그분들 한테 어떤 역할을 기대하십니까?

[이순희 회장]제가 생각하기로는 탈북민들이 시마다 시의회가 있지 않나요? 그런데 가서 한마디라도 같이 하고, 그렇게 같이 활동을 했으면 합니다.

[샘현 사무국장]저는 이번에 통일교육위원으로 들어오니까, 탈북민들이 해야 될 일이 많겠구나 이런 생각은 해봤어요. 저도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더 잘 알 수 있는게 저희들이 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대도 많이 해봤습니다. 저희들이 통일교육위원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묶어주고 하니까 진짜 고마웠죠.

[엘에이 거리] 차소리 엔진소리

서부에는 탈북민들이 얼마나 살고 있을까?

[샘현 사무국장] 현재 캘리포니아 전체적으로는 약 250명 정도 탈북민들이 있고요. LA에는 제가 볼 때는 150~180명 사이가 있는 것 같고, 또 탈북 사회에 잘 안 나오는 분들이 많아요. 현재 저희 통일연대가 관여하고 있는 가정은 약 40가정 그 정도 지금 연결이 되어있고 그 외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요. 이렇게 탈북민들 사이에 이렇게 하나 건너 연결을 해보면 한 180명 정도 엘레이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기자]예 그러면 난민으로 오신 분들이 몇 명이나 되나요?

[샘현 사무국장]난민으로 오신 분은 많지 않아요. 저희처럼 난민으로 온 분들은 제가 알기로는 LA에 한 12명 정도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다 한국에 정착하시다가 여기 이민 오신 분들이라 그분들이 좀 많이 어렵죠. 신분을 해결하기 제일 어려워하시는 것 같고, 처음에 저희도 한국 거쳐오신 분들에 대해 신경을 많이 안 썼는데 또 최근에는 그분들의 아픔을 좀 많이 알게 되고 공감도 되고 하니까. 다 같이 안고 가야 되는 사람들이고 또 그분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게 또 우리밖에 없는 거라 같은 탈북민들이 위로해줘야 되는 거라 그래서 좀 많이 지금 껴안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난민으로 정착한 탈북민은 물론 한국을 거쳐 이주한 탈북민들의 권익을 위하고자, 올해 초에 미주 북한인권통일연대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샘현 사무국장]올해 1월 11일에 창립을 했고요. 지금 한 6개월째 활동을 하고 있어요. 캘리포니아에서 많은 탈북민들이 또 같이 힘을 합쳐주고 그래서 현재 좀 잘 성장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단체를 만들게 된 취지가 있습니까?

[샘현 사무국장]저희들이 탈북민들의 인권을 먼저 지키고 싶었어요. 저희들이 뭉쳐서 단합해서 서로 돕고 이끌고 성장을 해서 탈북민들의 이미지도 개선하고….

미주북한인권통일연대는 미국 서부는 물론 알래스카에도 지부를 두고 있습니다. 얼마전 워싱턴 디씨에서 열린 전세계 공산주의희생자 헌화식에 참석하기 위해 알래스카에서 온 빅토리아 박씨를 만났습니다.

[워싱턴 디씨 거리]

[빅토리아 박씨]:저는 알라스카에서 살고 있고요. 저는 그냥 지금 직장생활을 하면서 북한 인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요. 이렇게 행사가 있으면 시간을 내서 와서 참여도 하고 우리 북한에 대한 실상을 알리고 있습니다. 저는 알라스카에서도 그 실상을 많이 알리고 있습니다.

북한에도 알래스카는 추운 겨울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온성군이 고향인 빅토리아씨에게는 추운 겨울이 두렵지 않다는 겁니다. 빅토리아 박씨는 일년에 한두번씩 알라스카 관광을 조직해 탈북민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빅토리아 박씨]알라스카에는 탈북민으로선 저희 부부가 최초로 정착했고요. 그 뒤로 제가 소개를 해서 약 6명 정도 들어와 있습니다. 그분들한테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 여기에서 정착했던 사례를 다 설명드렸고, 그분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그냥 열심히 살고, 이 나라 우리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와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면 나라가 인정해준다, 그러니까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이 내가 열심히 살자, 그런 마인드로 제가 그 분들한테 정보를 공유했고, 그리고 캠핑을 조직하기 위한 그런 모임도 알라스카 분들에 한해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서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빅토리아 씨는 알라스카에서 연어잡이, 가자미 잡이, 캠핑, 산나물 채취 등 이색적인 생활을 담은 사진을 탈북민 커뮤니티 방에 올려 관심이 높습니다.

[빅토리아 박]직접 제가 하기 때문에 그분들이 와서 "나 이런 곳에 가고 싶다"고 하면 제가 같이 가서 그런 체험도 하고 캠핑도 하면서 그분들한테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춥고 생소한 땅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북한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화목과 단합을 도모하고, 외로움을 이겨내고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는 박씨 부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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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북한인권통일연대 샘현 사무국장과 빅토리아 박 수석 부대표가 공산주의 희생자 헌화식에 참가하고 있다. / RFA PHOTO-정영

[빅토리아 박씨]:우리 북한에 대한 실상을 알리면서 미국에 와서 지금 정착하시는 분들, 앞으로 정착하려고 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정보를 공유해드리고 싶고, 그들도 이 사회에서 우리와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려고 하고 있고,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을 거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와서 사는 탈북민 이백화 여성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 적응이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백화 씨]애기 한달짜리 안고 죽을 고비 넘어서 그런 지 너무 몸이 아프니까 그 아프고 힘든 과정이 소중했어요. 그래서 이젠 열매를 봐야겠다. 내가 좀 더 잘되어야 하겠다. 우리가 왜 탈북했나요?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탈북하지 않았나요?

[노래방 소리]

내게도 사랑이 사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 뿐이라오.

내게도 사랑이 사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 뿐이라오.

탈북이라는 어려운 역경을 딛고 미지의 땅에 억세게 뿌리내리고 있는 탈북민들, 때론 좌절과 실패도 따르지만, 자녀들에게만은 고생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이민 1세대가 느꼈던 그런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앵커 멘트] RFA 자유아시아방송 기획 특집, [미 북한인권법 20주년- 미국에 뿌리 내린 탈북자들] 제5편 "서로 돕고 이끄는 미국 서부 탈북민들"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보도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기자였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