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김정은 총비서가 알곡 생산 구조를 바꾼다면서 강냉이 대신 강력히 추진한 밀·보리 재배, 알고 보니 강냉이 도둑들을 막지 못해 밀·보리로 곡종을 바꾼 것이란 주장이 나왔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김정은 총비서가 처음으로 밀·보리 농사를 강조한 것은 2021년 9월에 있었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5차회의 시정연설이었습니다. 이 연설에서 김 총비서는 종자 개량에 힘을 집중하며 밀·보리 파종 면적을 기존의 2배로 늘릴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후 북한 당국은 강냉이 재배 면적을 크게 줄이고 대신 밀·보리 면적을 압도적으로 늘렸는데 농민들 속에서는 이를 놓고 아직까지 설왕설래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김정은이 강냉이 농사를 포기하고 밀·보리 재배를 장려하게 된 배경까지 알려지면서 간부들조차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복수의 양강도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양강도 농업부문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18일 “지난 몇 년간 강냉이 밭을 다 뒤집어 엎고 밀·보리를 재배했는데 그 피해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며 “밀·보리는 종자 선별에 상당한 품이 들고 강냉이에 비해 생산량이 낮은데다 비료와 농약도 많이 들어 토양의 산성화를 재촉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문제로 내각 농업위원회도 올해 밀·보리 농사를 크게 떠들지 않고 있다”며 “지난 2월 말, 각 도 농촌경리위원회들에 내려 보낸 ‘새해 농사 지침’에서 ‘밀·보리 재배가 강냉이 농사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까지 밝혔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김정은이 강냉이 대신 밀·보리 농사를 장려하게 된 배경은 더 이상 강냉이 도둑을 막아 낼 방법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면서 “강냉이를 포기하고 대신 밀·보리를 심게 한 김정은의 사연을 알만한 간부들은 다 알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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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양강도의 한 간부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20일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8월, 알곡 예상수확판정 결과를 보고 받은 김정은이 크게 화를 내면서 내각 농업성을 해산해 버렸다”며 “코로나 사태로 장사를 못하게 된 주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데 내각 농업성이 아무 대책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과 2021년, 국가적인 강냉이 수확량이 연속 50만톤 미만이었다”면서 “코로나 사태로 당장 굶어 죽게 된 주민들이 막무가내로 농장 밭에 뛰어들어 강냉이를 도둑질해 아예 수확을 포기한 밭들도 많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강냉이는 도둑질이 쉬워 해마다 농장들은 재배 면적의 60%를 거둬들이면 다행으로 여겼다”며 “도둑들은 제일 크고 잘 여문 강냉이만 골라 훔친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또 소식통은 “이런 현상이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20년 가까이 계속됐지만 내각 농업성은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며 “이에 김정은이 2021년 9월, 새로 내각 농업위원회를 조직하면서 강냉이를 지키기 위한 대책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전했습니다.
“김정은의 지시에 머리를 짜내던 농업위원회 간부들이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강냉이 대신 도둑질이 쉽지 않은 밀·보리를 심자는 것이었다”며 “밀·보리는 2모작이 가능해 강냉이보다 (수확량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각 농업위원회의 조언이었다”고 소식통은 말했습니다.
김정은도 농업위원회 조언 따라
소식통은 “김정은도 식량난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도둑들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농업위원회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며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밀·보리 농사인데 문제는 재배 환경이 맞지 않은 북부 고산지대에도 밀·보리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이러한 사연은 최근 내각 농업위원회와 중앙의 간부들을 통해 지방의 간부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며 “도둑들 때문에 강냉이 재배를 포기했다는 사연을 듣게 된 간부들은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입니다.
에디터 양성원